참고자료/나무이야기

[도서]나무탐독(박상진저)- 물을 좋아하는 하천변의 터줏대감

비단순주 2017. 8. 23. 13:12

갯버들 / 왕버들


출처 : [도서]나무탐독 ㅣ 박상진 저 ㅣ 샘터 ㅣ 2015.10.28

p311 ~ p318

물을 좋아하는 하천변의 터줏대감

강을 따라 하구로 내려가면 폭이 넓어지면서 몇 갈래로 갈라지고 물이 흐르지 않는 나머지는 그냥 빈 땅으로 남아 있다. 물이 불어날 때만 물에 잠기는 이런 곳을 '개'라고 부른다. 개에도 어김없이 자리를 차지하는 자그만한 나무는 갯벌들이다. '개의 버들'이란 뜻을 가진 갯버들은 평지의 큰 강에서 산속의 실개천까지, 우리나라 어디라도 물이 흐르는 곳이면 터를 잡는 나무다.

갯버들은 봄의 전령으로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나무다. 먼 산에 아지랑이가 가물거리고 얼음장 밑으로 졸졸졸 시냇물 소리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하면, 갯버들은 벌써 깨어나 꽃을 피운다. 보송보송 귀여운 털 꽁지 같은 꽃을 조랑조랑 매단다. 버들강아지 혹은 버들개지락 부르는 것은 갯버들의 꽃 뭉치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갯버들은 우리 역사에 일찌감치 등장한다. 지금부터 이천여 년 전, 동부여의 금와왕은 어느 날 태백산 남쪽 우발수로 산책을 나갔다가 집에서 쫓겨난 한 여인을 만난다.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였다. 물을 다스리는 신이니 당연히 하백의 집은 물가일 수밖에 없다. 유화는 어린 시절부터 안마당인 하천 변에서 놀기를 좋아했다. 그곳에는 수많은 버들이 태곳적부터 자라고 있었다. 소박하고 담백하면서 그렇다고 결코 밋밋하지 않은 버들 꽃을 볼 때마다 아버지 하백의 눈에는 귀여운 딸과 잘 어울리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유난히 물가의 버들 사이에서 놀기를 좋아하는 맏딸에게 버들꽃, 즉 유화(柳花)란 이름을 붙여준다. 유화의 놀이터에 자라던 버들은 정확히 무슨 버들이었을까? 정황이나 자람 특성으로 보아 수많은 버들 종류 중에 갯버들이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갯버들은 몸체가 물속에 잠기어도 숨 막히지 않고 살아가는 비법을 선조로부터 전수 받았다. 아예 물속에서도 뿌리가 썩지 않고 녹아 있는 산소까지 흡수하면서 생명을 이어간다. 평생을 자라도 사람키를 넘기기가 어려운 난쟁이 나무다. 하지만 키다리 나무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개울을 지켜주는 수호천사로서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어서다. 부챗살처럼 수많은 가지를 뻗어 커다란 포기를 만든다.

갯버들은 강의 하구에 펼쳐지는 넓은 강 둔덕뿐만 아니라 상류로 올라온 샐개천까지 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자란다. 여름철에 비가 흠씬 내려 갑자기 큰물이 지면 부챗살 가지 사이로 물이 빠져나가면서 물 흐름 속도를 줄여주는 기능을 한다. 갯버들은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마철 계속되는 물살에 뿌리의 흙이 씻겨 내려가버리면, 실지렁이 모양의 잔뿌리가 허옇게 드러난다. 마치 '체'같아서 물에 떠내려오던 숲 속의 온갖 잡동사니가 모두 걸려든다. 천연 수질 정화 장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갯버들은 비록 작은 덩치지만 자연스럽게 하천을 다스리고 사람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고마운 나무다. 그래도 사람과 자연은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가 많다. 갯가의 넓은 터를 갯버들에게 너무 많이 줘버리면 먹고살 농경지가 좁아진다. 어쩔 수 없이 갯버들의 영역을 빼앗아야 한다.

둑을 쌓아 물의 흐름을 바꾸고 경지를 넓히는 일이다. 자연을 거스르면 언젠가는 재앙이 찾아오기 마련이기에 대책이 필요하다. 일부러 둑의 주위에 나무를 심어 대비하는 일이다. 이런 나무들을 통틀어 하천의 가장자리를 보호해준다고 하여 우리는 '호안림(護岸林)'이라고 부른다. 호안림에는 갯버들 같은 작은 나무도 있어야 하지만 웨만한 홍수에는 버틸 수 있는 큰 나무도 필요하다. 사람들은 물가에 잘 자라면서 비교적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들을 찾아냈다. 여러 나무가 있지만 버들 종류가 가장 적합니다. 부들부들하다는 뜻에서 나무 이름이 온 것처럼 버들은 나무 나라에서는 가장 유연성이 높은 나무다. 물살이 아무리 세차도 꺾이지 않고 휘어서 좋다.


대부분의 버들이 갯버들처럼 땅딸보인 데 비하여 큰 나무로 자라는 버들은 왕버들과 능수버들로 대표된다. 능수버들이 물가의 풍치수로 기능을 주로 했다면, 왕버들은 홍수 때 물이 넘어오는 것을 온몸으로 버텨주는 방패막이 호안림의 나무로 쓰였다. 경북 청송 주산지의 왕버들은 얼마나 나쁜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는지를 실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나무줄기가 거의 물속에 잠긴 채 저수지 가운데서 자란다. 주산지의 트레이드마크, 물속에 자라는 왕버들을 사람들은 참으로 신기해한다.

어떻게 물속에서 살아가는가? 조선 경종 원년(1721) 주산지가 만들어질 때 이 왕버들은 개울가에서 그냥 자라고 있었다. 저수지가 건설되면서 물이 차올라 지금처럼 물속에 잠기게 되자 주위의 다른 나무들은 모두 죽어버리고 왕버들만 살아남았다. 조상으로부터 물에 녹아 있는 산소를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을 전수 받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일 년에 한 번 저수지의 물을 빼내는 짧은 기간을 잘 활용한 지혜도 살아남는 데 큰 보템이 됐다. 그러나 주산지 왕버들의 삶이 결코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죽지 못하여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나무의 나이는 줄잡아도 350살은 된다. 이제 노인나무가 되어 자람 조건이 좋아도 힘들 나인데, 물속에 잠겨 있으니 앞으로의 삶이 그렇게 길지 않으리라고 본다. 죽어버린 나무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살아 있는 왕버들도 겨우겨우 생명을 부지할 따름이다.

이렇게 하천 변을 자람 터로 삼는 갯버들이나 왕버들과 같은 나무들은, 산꼭대기에서 항상 수분 부족으로 생사의 갈림길을 겪는 다른 나무들에 비하면 얼핏 보아 행복해 보인다. 과유불급이란 말은 나무 나라 백성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뿌리도 숨을 쉬어야 하니 물이 너무 많아도 숨 막혀 죽을 지경이다.

우리 땅의 하천 변에는 머나먼 옛날부터 온갖 어려움을 무릅쓴 갯버들과 왕버들을 비롯한 버들이 있어서 사람과 하천을 잇는 가교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다. 이제 땅을 넓히겠다는 사람들의 욕심을 조금 줄이고 '개'는 갯버들의 터로 다시 주어야 할 것 같다. 또 둑 높이만 자꾸 올려 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호안림이라는 숲을 더 늘려, 하천의 다스림은 자연에게 맡기는 것이 올바른 우리의 선택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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